[1917년 노벨 문학상 1] 카를 아돌프 옐레루프(Karl Adolph Gjellerup, 1857–1919) : 높은 이상주의에 영감을 받은 다양하고 풍부한 시

 

카를 아돌프 옐레루프(Karl Adolph Gjellerup, 1857–1919)는 20세기 초 덴마크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시인, 극작가로, 1917년 노벨 문학상을 동료 작가 헨리크 폰토피단과 공동 수상했다. 옐레루프는 덴마크와 독일, 동서양 사상과 문학, 과학과 종교, 자연주의와 신비주의를 넘나드는 복합적이고 실험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으며, 덴마크 문학사에서 가장 논쟁적이고도 독창적인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for his varied and rich poetry, which is inspired by lofty ideals”

 

카를 아돌프 옐레루프

1. 성장과 사상적 전환

옐레루프는 1857년 덴마크 로홀테(Roholte)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종교적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성경비평과 근대 사상에 접하면서 기존 신앙에 회의를 품게 된다. 특히 진화론과 자연주의, 그리고 당대 유럽의 급진적 문예비평가 게오르 브란데스(Georg Brandes)의 영향으로, 옐레루프는 전통적 기독교 신앙에서 벗어나 무신론적·과학주의적 세계관을 받아들였다. 그의 초기 저작들은 기독교적 도그마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진화론적, 결정론적 윤리관을 강하게 드러낸다.

2. 자연주의와 도전적 초기 문학

옐레루프의 첫 소설 『이상주의자(En Idealist, 1878)』는 젊은 시절의 급진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이어서 발표한 『유전과 도덕(Arvelighed og Moral, 1881)』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 허버트 스펜서, 프랜시스 골턴 등 당대 과학자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인간의 도덕과 운명, 사회의 진보를 결정론적으로 해석한 논문으로, 덴마크 대학 금메달을 수상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도덕과 진화, 유전의 관계를 탐구하며, 미래 세대가 과학적 진보와 도덕적 발전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1882년 다윈 사망 직후, 옐레루프는 시집 『영혼과 시대: 찰스 다윈을 위한 레퀴엠(Aander og Tider: Et Requiem over Charles Darwin)』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신을 “외로운 방관자”로 묘사하며, 다윈이 새로운 세속적 세계관을 열었다고 선언한다. 이처럼 옐레루프는 덴마크 내에서 가장 강력한 반교권주의적, 진화론적 입장을 취한 작가로, 초기에는 급진적 자연주의와 반기독교적 태도를 일관되게 보였다.

3. 문학적 전환과 독일로의 이주

1880년대 후반부터 옐레루프의 문학은 점차 고전적·역사적 주제, 서정시, 희곡, 그리고 인생의 윤리적 갈등으로 옮겨간다. 그는 독일 문학과 철학, 특히 괴테, 하이네, 그리고 니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1892년 독일 드레스덴으로 이주한 이후에는 독일어로 작품을 집필하며, 덴마크와 독일 양국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로 자리잡았다. 이 시기 그는 북유럽 신화와 그리스 비극, 인도 불교 등 다양한 문화와 사상을 자신의 작품에 융합하기 시작했다.

4. 철학적·종교적 탐구와 후기 문학

옐레루프의 후기 문학은 초기의 무신론적·과학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 인도 사상과 불교, 신비주의, 기독교적 영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동한다. 대표작 『순례자 카마니타(Pilgrimen Kamanita, 1906)』는 불교적 세계관과 환생, 해탈의 주제를 서구 소설 형식에 도입한 작품으로, 동서양 사상의 융합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서구 독자들에게 불교와 동양 영성의 세계를 소개한 선구적 시도로 평가받는다.

또한 그는 『브륀힐드(Brynhild, 1884)』, 『함바르드와 시그네(Hagbard og Signe, 1888)』, 『콩 히아르네 스칼드(Kong Hjarne Skjald, 1893)』 등 북유럽 신화와 그리스 비극을 변주한 희곡을 발표했으며, 『로물루스(Romulus, 1893)』, 『민나(Minna, 1889)』, 『G-Dur(1883)』 등에서는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윤리적 선택, 예술가의 고독을 탐구했다.

5. 문학적 특징과 사상적 궤적

옐레루프의 작품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 사상적 유연성: 초기에는 급진적 자연주의와 무신론, 후기에는 불교적·신비주의적 영성으로의 전환이 뚜렷하다.
• 윤리적 갈등: 그의 소설과 희곡은 종교적 도그마, 사회적 규범, 개인의 자유와 도덕적 책임의 충돌을 반복적으로 다룬다.
• 동서양 융합: 불교와 인도 사상, 북유럽 신화, 독일 낭만주의, 그리스 비극 등 다양한 문화적 전통을 창의적으로 융합했다.
• 언어와 정체성: 덴마크어와 독일어를 오가며 집필, 양국 문학의 경계인물로 평가된다. 독일에서는 오히려 덴마크보다 더 큰 명성을 얻었다.

6. 노벨 문학상과 평가

1917년, 옐레루프는 “고결한 이상에서 영감을 받은 다채롭고 풍부한 시적 작품”을 인정받아 헨리크 폰토피단과 함께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그의 문학이 “시적 형상과 사상, 그리고 인간의 내면적 성장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생전에는 덴마크와 독일, 유럽 각지에서 문학적 명성을 얻었으나, 사후에는 급격히 평판이 엇갈렸다. 그의 작품은 20세기 후반 이후 덴마크 내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으나, 동서양 사상과 문학, 종교와 과학,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실험성은 오늘날에도 재평가되고 있다.

7. 결론과 유산

카를 옐레루프는 덴마크와 독일, 동서양의 사상과 문학을 융합한 독창적 작가로, 자연주의와 신비주의, 무신론과 영성, 과학과 예술,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실험적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문학은 인간 내면의 윤리적 갈등, 종교와 과학의 대립, 동서양 사상의 융합이라는 근대적 문제의식과, 예술가의 자유와 고독, 인간의 성장과 해탈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동시에 담아낸다.
1917년 노벨 문학상 수상은 그의 문학적 실험과 사상적 유연성, 그리고 동서양 교류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옐레루프의 유산은 오늘날에도 덴마크와 유럽, 그리고 세계 문학사에서 사유의 경계를 넓힌 작가로 남아 있다.